안녕하세요, 제21회 윤동주기념백일장 심사위원회의 심사평과 운문부 / 산문부 (최)우수상 수상작을 공개합니다.
최우수상·우수상 수상작은 첨부 파일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제21회 윤동주기념백일장 운문부 심사평_나희덕(시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올해 윤동주백일장 운문부 시제는 ‘사진’과 ‘편지’였다. 이 두 시제처럼 시를 쓰는 일은 어떤 순간을 이미지로 담아내는 작업이고,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건네는 대화적 행위이다. 모든 참가자들이 진지하게 써내려간 시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고 일정한 수준을 갖추고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제의 구체성에도 불구하고 관념적인 시들이 많고 생활의 실감을 전해주는 시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표현들과 훈련된 시의 패턴이 오히려 익숙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런 속에서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자기만의 생각과 상상력의 확장을 보여주는 시들에 마음이 좀더 기울었다.
최우수작인 <편지>는 성장기의 통증을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에 실어낸 시로, 강렬한 흡인력과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편지’를 소재만이 아니라 시적 형식으로 삼아 무심한 듯 내뱉는 도발적인 언어들이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똥같이 배설되는 농담”이나 “기뻐하세요, 나 그만 더러워질게요” 같은 선언은 삶의 고통과 치욕을 지불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문장들이다. 침묵을 뚫고 울려퍼지는 이 목소리는 문학적 수사를 뛰어넘는 진솔한 감정으로 다른 시들과 구별되는 힘을 느끼게 했다.
우수작인 <찢어진 사진 이어붙이기>는 언니가 아끼던 사진이 물에 젖은 밤, 사진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한 자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찢어진 사진 조각들을 별자리처럼 이어가는 두 사람의 슬프고도 따뜻한 마음이 섬세하게 만져지는 듯하다. “서로의 아픈 무릎을 만져주”고 “서로의 이불을 나눠덮”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성장통을 나누어 가졌다”는 진술에 도달하는 과정이 직설적이지 않고 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다른 우수작인 <사진의 안과 밖>은 자퇴의 경험을 서사적으로 전개하는 시로, 길 위에 떨어진 사진들을 통해 떠오른 기억과 우정에 대한 생각이 인상적이다. 안양역 역사에서 길을 잃은 비둘기와 화자의 심리가 오버랩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된 사람의 복합적인 심리가 ‘사진의 안과 밖’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다만, 시가 길어지다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지는 듯해서 시상을 전체적으로 좀더 압축하면 좋겠다.
△제21회 윤동주기념백일장 산문부 심사평_전성태(소설가, 순천대학교 교수)
산문 부문의 시제는 ‘노래’와 ‘여행’이었다. ‘여행’을 글감으로 선택한 응모자가 60%에 달했다. 그러나 입상은 ‘노래’에서 5명, ‘여행’에서 3명이 배출되었다. ‘여행’ 소재가 글감으로서는 접근이 편했으나 소재의 확장성 측면에서는 ‘노래’가 더 우위에 있지 않았나 싶다.
심사위원들은 참신한 발상, 표현력, 그리고 공감력에서 빼어난 글에 주목했다. 공감력은 아무래도 세대적 고민이 잘 드러난 글에서 더 발현되었다.
응모작들은 소설 형식을 갖춘 글이 많았다. 픽션 쓰기에 대해 수련이 된 듯한 작품이 많았는데 이는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픽션은 서사를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자기를 표현하려는 글쓰기의 목적에 비추어 픽션의 한계(혹은 난이도)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글쓰기는 결국 세계에 대한 이해 혹은 불통을 독자와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자기 고민, 경험, 사유, 그리고 이를 딛고 선 표현의 밀도가 확보되는 형식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컨대 (응모자들의 사례에서 추출한다면) 내가 취준생이다, 실직자가 되었다, 시한부인생을 산다는 설정을 보자. 여러분의 경험치에서 공감 가는 디테일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부분이 기존 서사에서 얻은 클리셰한 상상력으로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대로 내가 오늘은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어서 혼자 노래방에 갔다라든가 내가 원하는 진로를 부모님이 반대한다라든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 인물은 마치 마주앉아 예기를 듣는 것처럼 금방 몰입하게 했다.
훌륭한 픽션은 디테일을 통해 인물을 살려내게 마련이다. 디테일은 외형뿐 아니라 감정의 고유성도 의미한다. 즉 픽션은 사건의 얼개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난이도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심사에서 픽션과 논픽션에 대한 우열을 두었던 건 아니다. 단지 픽션 쓰기에 대한 고민이 더 깊었으면 싶어서 따로 언급한다.
최우수작 <여름을 피해 여행하는 방법>은 미술 공부를 하고 있으나 정작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그만둘까 고민하는 인물 이야기이다. 가난을 표현하는 방식이 뛰어났다. ‘가난’은 흔한 소재이고 작가가 소재주의로 이를 취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마트나 지하철 같은 곳으로 가족이 피서를 갔다고 표현한다든가 ‘창문을 보지 않고 별을 그리는 방법’ 등을 둘러 얘기하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감정과 표현으로 ‘가난’을 감각하게 했다. 글 전체가 서정성 짙은 노래처럼 다가왔다. 이 글은 여러 질감과 미감으로 사물을 재현하는 수준이 뛰어났다.
우수작 <노래방에서>은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 부르고 학원에 가는 그렇고 그런 청소년의 일상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자기 현실을 되묻고 되묻는 인물을 냉정하게 다루는데도 다 읽고 나면 어떤 ‘절규’의 하울링이 귓전에 남았다.
다른 우수작 <돌아가는 여행>은 우선 공간이 매력적이었다. 매일 공항의 교통센터에 모이는 노인들,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게 되는 젊은 인물 얘기를 다룬다. 철저히 만들어진 이야기인데도 공간을 꼼꼼하게 묘사하여 실감을 높였다. 나아가 ‘돌아가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는 사유를 이끌어내는 힘도 매력적이었다.
제한된 시간과 주제로 글을 써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시제가 나오면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낙선자들이여, 이런 상상을 해보자. 인생을 통해 내가 지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한 500편쯤 된다고 치자. 오늘 나는 500편 중 한 편을 지어봤을 뿐이다. 당연히 내게는 499편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심사위원
◇운문부문: 한수영 심사위원장, 나희덕 시인
◇산문부문: 전성태 소설가, 배정상 교수